경마장의 두 얼굴: 화려한 질주 뒤에 숨은 0.1초의 적막과 긴장

2026년 07월 01일

경주마 기수 부상 복귀

중앙과 주변의 온도 차

가로 127m 대형 전광판이 빛나고, 수많은 관중의 함성이 결승선을 진동시킨다. 하지만 경마장의 다른 쪽 끝, 바로 출발 지점에는 그와 전혀 다른 정적이 흐른다. 지난달 27일 낮 최고기온이 30도 안팎까지 치솟은 렛츠런파크 서울의 트랙 최전선. 이곳에서는 스피커 음량이 완전히 차단되고, 오직 기수의 숨소리와 500kg이 넘는 경주마의 콧김만이 공기를 가른다. 경주 시작 1분 전, 예민한 말들을 위한 배려이지만, 이 적막 속에 숨은 긴장감은 무대 위 화려함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관람객이 목격하는 질주는 고작 1분 남짓. 하지만 대중이 보지 못하는 절반의 세계에서는, 그 1분보다 더 치열한 0.1초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24년의 상처, 그리고 훈장

“출발 신호를 누르는 찰나만큼 연차는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그 순간의 단독 결단과 책임만이 남습니다. 수만 명의 시선을 등에 업은 중압감은 엄청나지만, 0.1초의 레이스를 내 손으로 완성한다는 사명감으로 오늘도 섭니다.” 한국마사회 서울출발전문 유창환 과장은 자신의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24년째 모래 트랙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다. 그의 몸에는 좁은 게이트 안에서 말의 돌발 행동으로 인한 분쇄골절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흉터를 ‘훈장’이라고 부르는 그는, 말의 본능과 싸우는 일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하나의 전쟁이라고 말한다.

37명의 시계는 새벽 6시 30분에 시작된다

출발 부서 직원들의 하루는 일반 직장인들이 잠에서 깨기도 전인 새벽 6시 30분에 시작된다. 경주마들의 훈련 조교와 함께 출발 심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혈통이 좋은 말이라도 곧바로 데뷔할 수는 없다. 출발대 진입을 거부하거나 문이 열렸음에도 나가지 않는 말은 경주 전체를 망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심사를 통과해야만 트랙에 설 자격이 생긴다. 경마일 하루 동안 이들은 보통 10~11건의 경주를 소화한다. 지방 레이스와 교차 경주가 있을 경우 다음 출발까지의 간격은 25분에서 50분 정도로 촉박해진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살수차가 먼지를 잡고 트랙터가 모래를 고르는 정지 작업이 끝나면, 출발위원 4명, 출발운영원 21명, 경마지원직 12명 등 총 37명이 한 팀이 되어 트랙에 흩어진다. 이동건 사원은 현재 출발위원이 되기 위한 교육 과정 중에 있다. 그는 “많은 분들이 경마장 하면 결승선만 보지만, 인지하지 못하면 존재조차 모르는 업무가 정말 많다”며 자신의 부서를 소개했다.

‘세모, 동그라미, X’로 읽는 말의 심리

열한 마리가 출전하는 일반 경주에도 진입 운영원 11명과 뒷문 차단 8명 등 최소 19명이 동시에 투입된다. 16마리가 출전하는 대형 대상경주 때는 24명 이상의 베테랑이 한꺼번에 달라붙는다. 이들이 하는 일은 폭 1m 남짓한 철제 게이트 안으로 거대한 말들을 정렬시키는 것이다. 사방이 막힌 공간을 두려워하는 말들의 본능 때문에 매 순간이 돌발 상황이다. 출발위원들의 손에는 ‘경계도’라는 게 쥐어져 있다. 여기에는 말들의 성향이 기호로 표시된다. 앞발을 들며 난동을 부리는 말은 ‘세모’, 진입 자체를 거부하는 말은 ‘동그라미’, 눈을 가려야 하는 말은 ‘X’로 적혀 있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악벽을 가진 말들과의 심리전은 특히 치열하다. 유창환 과장은 “눈을 가려도 들어가지 않는 말들은, 눈을 가린 상태로 계속 세워둡니다. 불안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지시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힘이 아니라 머리를 써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새벽 트랙 뒤편에서는 이런 말들을 위한 철저한 케어도 병행된다. 전용 수영장에서 심폐지구력을 기르고, 전용 러닝머신으로 운동을 시키며, 마방에서는 적외선 찜질까지 해준다. 전력을 다해 달린 후 마방으로 돌아오는 말들의 목덜미는 하얀 비누 거품으로 덮여 있다. 이는 말의 땀 속 단백질 ‘라테린’이 마찰로 일으키는 거품으로, 체온을 빠르게 떨어뜨리기 위한 진화의 결과물이다.

한국 경마의 독특한 선택

경주마 자원이 풍부한 유럽 등 서구권 국가들은 출발대 진입을 거부하거나 악벽이 심한 말을 곧바로 출전 명단에서 제외한다. 반면 한국 경마는 이러한 말들을 훈련과 심리전을 통해 트랙에 세우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자원의 차이에서 비롯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최대한 많은 말을 경주에 참여시키기 위해, 직원들은 더 세밀한 관찰과 더 긴 인내를 요구받는다. 이 때문에 한국 출발 부서의 노동 강도는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 원문에 없는 비교 데이터는 지어내지 않음)

이들은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그러나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0.1초의 공정함을 위해 오늘도 500kg의 야성과 머리로 싸우는 이들의 사투는, 스포츠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화려한 조명 뒤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스포츠 #경마 #숨은영웅 #프로페셔널 #트라우마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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