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은행권 자금세탁방지 임원 긴급 소집…가상자산·해외송금 신종 수법 대응 논의
2026년 07월 01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지난 1일, 금융감독원이 주관하는 이례적인 간담회가 열렸다. 자리에는 김형원 금감원 민생금융 담당 부원장보를 비롯해 국내 20개 은행의 자금세탁방지(AML) 담당 임원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약 1시간 동안 최근 급변하는 금융 범죄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논의했다.
금감원이 이들을 소집한 배경에는 갈수록 교묘해지는 돈세탁 수법이 자리 잡고 있다. 김 부원장보는 이 자리에서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사기 범죄는 물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도박·마약 범죄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범죄 수익을 숨기는 방식이 가상자산, 해외송금, 법인계좌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장에선 “이런 추세가 국민의 경제적 손실을 넘어 금융 시스템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금감원은 이에 따라 은행권의 자금세탁방지 체계를 한층 더 고도화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문했다.
주목할 세 가지 신종 수법
금감원이 이날 집중적으로 조명한 건 크게 세 가지 유형의 신종 자금세탁 의심거래다. 첫 번째는 ‘자유적금계좌 악용’ 사례다. 일부 은행이 자유적금계좌 신규 개설에 제한을 두지 않는 점을 노려, 단기간에 여러 계좌를 만들어 중고거래 사기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달 25일 이미 은행권에 계좌 개설·해지 제한과 모니터링 체계 구축을 유도한 바 있다.
두 번째 수법은 ‘법인체크카드’를 악용한 것이다. 사용한도에 제한이 없는 법인체크카드로 대량의 상품권을 구매한 뒤, 이를 되팔아 현금으로 전환하는 구조다. 마지막으로 ‘외화계좌’를 거치는 방식도 확인됐다. 보이스피싱 등으로 원화계좌에 유입된 불법 자금을 해외주식 거래인 것처럼 위장해 타행 외화계좌나 증권사 위탁계좌로 옮긴 후, 다시 원화로 환전해 현금화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달 1일부터 의심거래 보고의 적정성을 점검하고, 시스템이 미흡한 일부 은행에는 개선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수법들이 기존 규제의 사각지대를 정확히 파고든 만큼, 은행들의 대응이 시급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사에서 드러난 ‘부실한 관행’들
간담회에서는 금감원 검사 과정에서 적발된 은행권의 미흡한 업무 관행도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대표적으로 비대면 채널에서 여러 개인고객 정보가 동일한 휴대전화번호로 등록된 사례가 대거 확인됐다. 이른바 대포통장으로 의심되는 정황이지만,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지적은 사기이용계좌 등록 이력이 있는 고객에 대한 처리였다. 이들 상당수를 오히려 자금세탁 저위험군으로 분류하는 등 고객위험평가가 부실하게 운영된 사례가 적발됐다.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이 포착한 의심 계좌를 고객확인이나 의심거래보고(STR)에 연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문제로 지적됐다.
또한 일부 은행은 영업 규모에 비해 자금세탁방지 전담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인력 이탈 시 대체할 충원 계획조차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해 금감원은 각 은행이 자체 점검과 독립적 감사를 실시해 미흡한 부분을 자율적으로 시정하라고 당부했다.
AI 플랫폼 ‘ASAP’의 역할과 협력 약속
김형원 부원장보는 이날 간담회에서 보이스피싱 정보공유·분석 AI 플랫폼인 ‘ASAP’의 적극적인 활용도 주문했다. 이 시스템은 금융·통신·수사 기관이 각각 파악한 의심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인공지능이 패턴을 분석해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는 장치다. 금감원은 이 플랫폼을 통한 신속한 정보 교환이 신종 수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핵심 열쇠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은행들은 의심거래를 조기에 탐지하기 위한 시스템 고도화 사례 등 자체 업무 노하우를 서로 공유했다. 이들은 이날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자금세탁방지 역량 강화에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앞으로 AML 체계 고도화를 통해 은행권이 민생침해 금융범죄 예방에 앞장설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의 이번 경고가 실제로 은행권의 감시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지, 업계의 자발적 변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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