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한국의 ‘지능 생산국’ 선언에 촉각…반도체·AI 3대 메가 프로젝트 견제 본격화
2026년 07월 01일

세계 파운드리 시장을 장악한 대만이 한국의 반도체·AI 투자 청사진을 정밀 분석하며 공개적인 경계심을 드러냈다. 지난 1일 대만 연합보와 중국시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대만경제연구원(TIER)을 비롯한 현지 싱크탱크들은 한국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 투자 계획이 머지않아 대만과 정면충돌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한국의 AI 클러스터 구축 구상이 대만 과학단지 모델을 벤치마킹한 국가 차원의 산업 전략이며, 첨단 공정과 연구개발(R&D) 경쟁이 더욱 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흥미로운 점은 대만이 단순한 산업 평가를 넘어 한국이 ‘메모리 생산국’에서 ‘지능 생산국(Intelligence Producer Nation)’으로 변모하려는 시도 자체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한 이 개념은 기존 제조업 중심의 국가 경쟁력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꾼다. 산업화 시대에 자동차나 철강, 메모리 생산량이 국가의 힘이었다면, AI 시대에는 연산 능력을 얼마나 확보하고 지능을 생산·유통·수출하느냐가 핵심이 된다는 논리다. 이는 TSMC라는 단일 축에 의존해 온 대만의 기존 전략과 본질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파운드리 단독 우위의 한계… HBM·GPU·패키징 융합이 판을 바꾼다
대만 내부에서도 ‘파운드리 만능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글로벌 반도체 질서는 한국이 D램과 HBM을, 대만이 첨단 GPU와 AI 가속기를 생산하는 안정적인 분업 구조로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AI 팩토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같은 분업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HBM, GPU, 첨단 패키징, 데이터센터, 전력망, 냉각 시스템이 하나의 거대한 연산 생태계로 융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6월 30일자 1면에서 한국의 AI 메가 프로젝트를 조명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한국이 메모리 생산을 넘어 GPU 로직, 첨단 패키징, AI 데이터센터, 로봇 산업까지 연결하는 데 성공하면 기존 산업의 판 자체가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대만 전문가들은 “단순히 파운드리만으로 장기 패권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공개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메가 프로젝트가 단순한 생산 확대 정책이 아니라, AI 시대의 국가 운영체제(OS)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4팹 전공정 체제’가 현실화된다면? 대만의 가장 민감한 시나리오
이번 분석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대만이 가장 경계할 시나리오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 지역에 듀얼팹(Dual Fab) 체제를 구축하는 경우다. 용인이 기존 메모리·반도체 생산 축으로 기능하는 동안, 호남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GPU 로직과 HBM·베이스 다이를 분리 생산한 뒤 첨단 패키징 공정에서 하나의 AI 칩으로 결합하는 방식이다.
만약 호남에 삼성 듀얼 팹과 SK 듀얼 팹이 동시에 들어서면, 한국은 단순 메모리 생산국에서 완성형 AI 가속기를 만들어 내는 국가 단위 4팹 전공정 체제로 진화하게 된다. 이는 TSMC가 독점해 온 첨단 AI 칩 생산 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구조다. AI 시대 경쟁의 핵심은 ‘HBM을 많이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GPU 로직과 HBM을 통합해 완성된 연산 코어를 얼마나 자체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만의 견제 속 한국의 리스크… 내수 부족과 감가상각 부담
대만 측은 한국의 대규모 투자 계획에 대해 명과 암을 동시에 지적했다. 대만 경제연구원은 한국 정부 주도의 투자가 향후 AI 수요가 둔화될 경우 과잉 투자와 막대한 감가상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호남권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신규 생산기지 건설이 수도권의 토지·전력·용수 비용 상승 압박을 완화하려는 전략임을 인정하면서도, 고정비 부담이 기업 실적을 악화시킬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 자체가 오히려 대만의 깊은 경계심을 반영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AI 시대의 데이터센터와 AI 팩토리는 단순한 제조 공장이 아니다. 수백만 개의 GPU와 HBM, 초고속 네트워크, 기가와트(GW)급 전력망이 결합된 국가 단위 연산 인프라다. 결국 경쟁의 본질은 ‘얼마나 많은 웨이퍼를 생산하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연산 코어를 확보해 산업 전반에 공급할 수 있느냐’로 바뀌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과 대만, 두 나라의 반도체 패권 경쟁은 이제 단순한 기술 격차를 넘어 ‘AI 생태계를 누가 더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는가’로 귀결될 전망이다. TSMC라는 절대 강자의 아성을 넘기 위해서는 한국이 메모리, 파운드리, 패키징, 데이터센터를 하나로 묶는 통합 전략을 얼마나 속도감 있게 실현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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