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피로에 지친 2030, 극장과 신문으로 ‘느린 미디어’ 찾는다
2026년 07월 03일
수많은 영상이 손끝 하나로 스쳐 지나가는 시대. 대학생 최모(24)씨는 요즘 일부러 극장으로 향한다. 스마트폰 속 짧은 클립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소비하지만, 정작 뇌리에 박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게 그의 고민이다. 최씨는 “온라인 콘텐츠에 파묻혀 지내다 보면 완전히 몰입하는 순간이 일상에서 사라진다”며 “극장에서는 두 시간 동안 온전히 작품에 집중할 수 있고, 같은 영화라도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고백은 단순한 개인 취향을 넘어, 디지털 환경에 피로를 느끼는 젊은 세대의 공통된 정서를 드러낸다.
직장인 김민준(28)씨의 사례는 더욱 극명하다. 그는 2024년 비상계엄 사태를 기점으로 중요한 뉴스를 확인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부모님 댁에 배달되는 종이신문이 그의 주된 정보원이 된 것이다. 김씨는 “SNS는 속도만큼 장점이 크지만, 유튜브에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편향된 주장이 무분별하게 번지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신문은 사실을 검증하고 정제된 언어로 차분히 정리해주기 때문에,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소비할 가치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역설적 반등’…10대는 종이신문을 읽는 중
전통 미디어를 둘러싼 풍경은 어둡기만 하다. 지난해 JTBC는 채무불이행을 선언했고, 국내 신문사 매출 1위 중앙일보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메가박스 등 주요 계열사들도 기업회생 절차를 밟았다. 중앙그룹의 위기는 단순한 유동성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 산업 전체의 구조적 딜레마를 상징한다. 콘텐츠 유통의 주도권은 이미 유튜브 등 SNS로 넘어갔고, 광고 시장도 온라인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된 지 오래다. 전통 매체들은 공적 책임과 수익 창출 사이에서 점점 더 큰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예상치 못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25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종이신문을 읽었다고 답한 10대 비율은 12.7%로 집계됐다. 이는 2019년 7.8%, 2022년 11.4%에 이어 꾸준히 상승한 수치다. 반면 같은 재단의 ‘2025 언론수용자 조사’에서 전체 종이신문 열독률은 8.4%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특히 50대의 이탈이 두드러진 것과 비교하면, 청소년 층의 반등은 더욱 대비된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2년 개정된 교육과정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초·중·고 모든 교과와 연계하도록 명시했다. 이로 인해 청소년들이 전통 미디어를 대하는 시각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보의 신뢰성과 깊이를 따지는 습관이 형성되면서, 오히려 검증된 매체를 찾는 수요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경제신문 읽기 모임부터 뉴스레터까지…틈새시장의 등장
물론 레거시 미디어가 과거의 영향력을 회복한 것은 아니다. 자극적인 콘텐츠와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온라인 환경에서, 전통 언론은 ‘깊이 읽기’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틈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최근 대학가와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는 경제신문을 함께 읽고 분석하는 모임이 확산하는 추세다.
직장인 박성민(31)씨는 매일 아침 경제신문을 배달받아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는다. 이후 3~5개의 기사를 선별해 요약한 뒤, 화상회의에서 동료들과 내용을 공유한다. 그는 “시장의 흐름과 배경까지 함께 이해할 수 있어 훨씬 공부가 된다”고 전했다. 이처럼 종이신문을 학습 도구로 활용하는 사례 외에도, 일간지의 디지털 유료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뉴스레터를 정기 구독하는 젊은 층도 늘고 있다.
영남일보 독자 이모(28)씨는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가장 큰 차이로 ‘팩트체크’를 꼽았다. “SNS는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데 집중하다 보니, 사실 확인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정보도 빠르게 퍼져나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튜브에서 잘못된 정보가 퍼져도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를 자주 보지만, 전통 언론은 정정보도 등 바로잡는 시스템이 있다는 점에서 더 신뢰가 간다”고 설명했다.
극장으로 돌아오는 관객들…OTT 대신 ‘몰입 경험’
이 같은 흐름은 영화 산업에서도 감지된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데이터에 따르면, OTT와 쇼트폼 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 중 일부가 다시 극장을 찾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최씨의 사례처럼,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스스로 설계하려는 니즈가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디지털 환경이 제공하는 편리함보다, 몰입을 통한 정서적 만족감을 더 중시하는 소비 태도가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전통 미디어의 위기가 여전히 계속되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젊은 세대가 신문과 극장을 다시 찾는 현상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단순한 레트로(복고) 열풍을 넘어, 정보의 질과 경험의 깊이를 중시하는 새로운 소비 주체가 형성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앞으로 레거시 미디어가 이 틈새를 얼마나 공고히 다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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