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20년 만에 게이츠재단 기부 중단…엡스타인 연루 조사 결과 주시
2026년 07월 01일

‘오마하의 현자’라 불리는 워런 버핏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설립한 게이츠재단에 대한 연례 기부를 올해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지난 2006년부터 매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해당 재단에 넘겨온 관행을 20년 만에 깨는 파격적인 행보다. 그간 누적된 기부 규모는 약 480억 달러, 우리 돈으로 74조 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액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9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버핏이 통상 6~7월에 진행하던 기부 일정을 올해는 미루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버핏은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2019년 사망)과 게이츠재단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내부 조사 결과를 먼저 확인한 뒤 기부 여부를 최종 판단할 것으로 알려졌다. 게이츠재단은 현재 로펌을 선임해 엡스타인과의 연관성을 조사 중이며, 버핏 측은 이르면 올여름 나올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돌아선 우정? 게이츠, 버크셔 주총에서도 제외
버핏과 게이츠의 관계도 눈에 띄게 차가워지고 있다. 미 법무부가 엡스타인 사건 관련 자료를 대거 공개한 이후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끊긴 정황이 포착됐다. 버핏은 지난 3월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자료가 공개된 뒤 게이츠와 단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더욱 이례적인 일은 지난 5월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벌어졌다. 게이츠는 수년 만에 처음으로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WSJ에 따르면 게이츠의 불참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일부 인사들이 그에게 자리를 비우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심지어 게이츠는 버핏과 버크셔 이사진이 앉는 지정석에도 함께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정황은 두 거물 사이의 신뢰가 상당히 손상되었음을 암시한다.
게이츠의 청문회 증언 “엡스타인 만남, 심각한 실수였다”
한편 게이츠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감독위원회 비공개 청문회에 출석해 엡스타인과의 교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CNN방송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게이츠는 모두발언에서 “엡스타인이 지속적으로 범죄 행위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한 적도, 알게 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엡스타인의 섬이나 목장, 플로리다 자택에 가본 적이 없다”며 “나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도 엡스타인이 자신의 결혼생활 중 불륜 사실 등 민감한 사생활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점을 시인했다. 게이츠는 “이 불륜은 엡스타인과의 교류와 직접 관련이 없지만, 내 가족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토로했다.
게이츠는 이번 교류가 자신의 자선 활동에 큰 타격을 입혔음을 인정했다. 그는 “내 평판은 생명을 구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기반”이라며 “엡스타인을 만난 일은 심각한 판단 착오였으며, 그간 쌓아온 모든 노력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자책했다. 또한 “엡스타인의 행동은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살 기회를 갖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내 노력과 정반대였다”고 덧붙였다.
자선계의 신뢰 위기와 버핏의 메시지
버핏의 기부 보류는 단순히 개인의 자산을 어디에 쓸지 고민하는 차원을 넘어, 전 세계 자선 업계에 던지는 강력한 경고로 읽힌다. 거대 자본이 흘러가는 재단의 운영 투명성과 거버넌스가 도마 위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버핏이 ‘조사 결과를 먼저 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엡스타인과의 관계가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일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게이츠 역시 청문회에서 엡스타인과의 관계가 자신의 공익 이미지에 치명적이었다고 인정한 만큼, 이번 사태는 큰돈을 다루는 재단들이 외부 인사와의 관계 설정에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버핏의 선택은 앞으로 게이츠재단이 어떤 내부 쇄신과 투명성 강화 조치를 내놓느냐에 따라 방향이 갈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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