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열 교수, “출산율만 쫓지 말고 인구의 질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2026년 07월 03일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산부인과 한정열 교수가 최근 저서 『인구, 양보다 질(Population, Quality over Quantity)』을 내놓았다. 그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이 당면한 초저출산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태어나는 아이의 숫자를 늘리는 데 집착하기보다, 태어난 아이들이 건강하고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정책의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게 핵심 골자다.
한 교수는 30년 가까이 산부인과에서 진료하며 목격한 현실을 바탕으로, 지난 20여 년간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음에도 출산율은 좀처럼 반등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는 기존 정책이 ‘출산율’이라는 단일 지표에 과도하게 매몰되어 있었다고 진단하며, 이제는 ‘양’에서 ‘질’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라고 제안했다.
AI·자동화 시대, 국가 경쟁력은 인구 규모 아닌 인재의 창의성
책은 인구 감소가 가져올 생산가능인구 축소, 고령화 심화, 지방 소멸, 노동력 부족, 복지 재정 압박 등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를 다양한 연구와 통계로 분석했다. 특히 한 교수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는 미래에는 국가 경쟁력이 단순 인구 수가 아니라 창의성과 생산성을 갖춘 인적 자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정의한 ‘질적 인구(Quality Population)’는 신체적 건강은 물론 인지·교육 역량, 정서적 안정과 애착, 사회성과 도덕성까지 두루 갖춘 인구를 의미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임신 전 건강관리부터 태아기, 영유아기, 교육, 가족환경, 사회안전망에 이르는 생애주기별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바커 가설’이 던지는 메시지…태아기 건강이 평생을 좌우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세계적 역학자 데이비드 바커의 ‘바커 가설(Barker Hypothesis)’을 인용한 부분이다. 이 가설은 태아기 건강과 환경이 성인기에 발병하는 만성질환과 삶의 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한 교수는 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건강한 임신과 출산 환경 조성이 곧 국가 경쟁력 강화의 출발점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한 교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단순히 얼마나 많은 아이가 태어나느냐보다, 태어난 아이들이 얼마나 건강하고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과 함께 아이 한 명 한 명의 성장 환경과 삶의 질을 높이는 국가 전략이 병행돼야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위원이자 현장 의사, 두 역할이 만든 통찰
한정열 교수는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산부인과 교수이자 임산부약물정보센터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한국마더세이프(MotherSafe) 프로그램과 국가 모자보건 사업 등을 이끌어 온 산부인과 전문의로서의 현장 경험을 갖췄다. 현재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어서, 그의 제안이 실제 정책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번 저서는 그간 출산 장려에 방점이 찍혔던 저출산 대응 논의를 임신·출산·양육·교육이라는 생애 전반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단순한 숫자 늘리기가 아닌, 아이 한 명 한 명의 성장 과정에 투자하는 쪽으로 정책 패러다임이 이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출산율 반등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인구의 질’이라는 새로운 화두가 학계와 정책 현장에서 어떤 논쟁을 불러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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