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의 진짜 병목은 AI 아닌 하드웨어 양산력…자동차 부품사 재평가
2026년 07월 02일

휴머노이드 로봇 업계의 화두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피지컬 AI 기대감 속에서 대규모 언어모델과 시각-언어-행동 모델을 앞세운 시연 영상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최근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소프트웨어적 성취보다 ‘실제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싸게, 많이 찍어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화투자증권 김성래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로봇 상용화의 진정한 병목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기계적 완성도와 양산 역량이라고 지적했다. 가상환경에서 완벽하게 학습된 동작도 실제 공장에서 마찰·중력·진동·발열·충격을 견디지 못하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로봇 전문 기업뿐 아니라 자동차 부품사들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수십 년간 가혹한 조건에서 부품을 검증하고 수만~수백만 개 단위로 균일하게 생산해 온 경험을 축적해왔다. 휴머노이드 로봇 한 대에는 1만 개 안팎의 부품이 결합된다는 점에서, 이 같은 대량 생산 노하우가 로봇 업계에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8년 아틀라스 3만대 양산… 현대차그룹의 실험장 RMAC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의 양산 계획이 구체화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부터 이 로봇을 연간 3만 대 규모로 생산하는 체제를 준비 중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초기 물량은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에 투입돼 서열화 작업과 복잡한 조립 공정 자동화에 활용될 전망이다.
이 과정의 핵심 거점은 오는 8월 가동 예정인 RMAC(Robotics Manufacturing & Automation Center)이다. 이 시설은 실제 제조·물류 현장을 모사해 숙련 작업자의 동작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AI 학습과 동작 생성, 가상 검증, 실증으로 연결하는 양산 개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한다. 한화투자증권은 RMAC에서 확보되는 데이터와 설계 변경 결과가 2028년 본격 양산 공정 최적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틀라스가 수행할 작업은 단순 서비스 업무가 아니다. 보고서는 모듈 부품 5~10kg, 도어 판넬 등 차체 부품 15~30kg을 다루는 제조·물류 현장을 주요 사용처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지속 30kg, 순간 50kg 수준의 가반하중과 4시간 연속 작동, 배터리 교체 구조, 방수·방진 및 온도 대응 능력이 상용화의 필수 조건으로 꼽힌다.
현대모비스, 2030년 액추에이터 매출 5520억원 전망
보고서에서 가장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된 것은 현대모비스의 로봇 액추에이터 매출 전망이다. 한화투자증권은 HMG 로봇 액추에이터 매출이 2030년 3억8000만 달러, 원화 기준 약 5520억 원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는 아틀라스 1만5000대 생산, 대당 액추에이터 31개, 안전재고와 사후관리 물량을 고려한 계산이다.
액추에이터는 휴머노이드 로봇 관절을 움직이는 핵심 부품으로, 모터·감속기·제어기가 결합돼 팔과 다리의 힘과 정밀도를 결정한다. 제조·물류 현장에서 고중량 작업을 수행하려면 최소 100Nm/kg 이상의 토크밀도가 필요하다는 게 분석의 골자다. 보고서는 아틀라스에 적용되는 액추에이터의 토크밀도를 약 220Nm/kg로 추정했다. 유니트리, 피규어 AI, 테슬라 등 글로벌 로봇 업체들도 100Nm/kg 이상 영역에서 자체 액추에이터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모비스의 역할은 단순 부품 공급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현대모비스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메커니즘을 대량 양산과 원가 측면에서 최적화하는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로봇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부품 수, 조립 공정, 유지보수 비용을 낮추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구간이라는 설명이다. HL만도 역시 로봇 부품 양산 역량이 조명받을 수 있는 기업으로 거론되지만, 글로벌 로봇 업체들의 액추에이터 내재화 움직임이 외부 부품사에는 리스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보티즈, 500만개 CAPA 확보… 판매 목표 67% 상향
액추에이터 수요 확대의 직격탄을 맞는 기업으로 로보티즈가 꼽힌다. 보고서에 따르면 로보티즈는 LG전자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에 액추에이터 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며, 이에 대한 지분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다. 해당 공장은 액추에이터 기준 총 500만 개의 CAPA(생산 능력) 규모로 건설되고 있으며, 올해 10월 부분 가동을 목표로 한다.
판매 목표도 대폭 상향 조정됐다. 보고서는 로보티즈가 급증하는 액추에이터 수요에 대응해 올해 판매 목표를 기존 30만 개에서 국내 30만 개와 우즈베키스탄 20만 개를 합친 50만 개로 67% 높였다고 분석했다. 피지컬 AI 연구와 로봇 상용화 준비가 확대될수록 액추에이터 수요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 배경이다.
이 같은 흐름은 로봇 밸류체인에서 자금의 흐름이 AI 모델 개발에서 하드웨어 및 제조 공정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로봇 한 대에는 30~50개의 액추에이터와 센서, 배터리, 프로세서, 전력·통신 부품이 들어간다. 부품 발주부터 입고, 가공, 조립, 최종 검수까지 관리하는 공급망 역량이 결국 상용화 경쟁의 승부처가 될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시연용 장난감’에서 ‘공장의 일꾼’으로 진화하는 그날, 부품 양산 기술이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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