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진의 ‘제비가 낮게 날면’: 잃어버린 자연의 신호를 찾는 감각의 회복
2026년 07월 03일

오는 7월 3일부터 8월 8일까지, 서울 자하문로에 위치한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권소진 작가의 개인전 ‘제비가 낮게 날면’이 열린다. 전시 제목은 비가 내리기 직전, 먹잇감인 곤충이 낮게 날아오르자 이를 쫓는 제비도 지면 가까이 비행한다는 자연 현상에서 착안했다. 작가는 이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미세한 변화가 거대한 환경의 변동을 예고하듯, 일상의 평범한 풍경 속에 숨은 감각의 순간들을 포착해 화폭에 담아냈다.
과거 사람들은 바람의 방향, 구름의 움직임, 새들의 행동 같은 자연 신호를 읽으며 계절과 날씨를 예측하곤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속 일기예보가 일상화된 오늘날, 이 같은 섬세한 징후는 대부분 무시된 채 살아간다. 권소진은 바로 여기서부터 ‘감각의 회복’에 주목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 상상력을 예술로 재현하다
이번 전시에서 권소진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유년의 기억을 예술적 언어로 끌어낸다. 벽지 속 구름이 실제 하늘처럼 흘러가는 듯하고, 종이꽃에서 향기가 날 것 같으며, 오려 붙인 새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했던 그때의 상상력이다. 유년 시절에는 모조품과 진짜를 엄격히 구분하기보다, 사물 자체를 살아 있는 존재로 받아들였던 특별한 감각이 이번 작업의 핵심적인 출발점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러한 기억을 회화 속에서 새롭게 구성해낸다. 물감으로 만든 테이프처럼 보이는 붓질, 종이를 오려 붙인 듯한 섬세한 터치, 먹 드로잉을 연상시키는 가는 선들, 손으로 찢은 벽지 같은 질감 등은 실제 대상과 매우 흡사하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은 이미지들로 관객 앞에 펼쳐진다.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이 화면은 관람객의 시각을 끊임없이 흔들며, 현실과 환영 사이를 오가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대표 연작과 지각 실험
대표작인 ‘구름 벽지와 드로잉’ 연작은 작가의 문제의식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작품군으로 꼽힌다. 오래된 집 벽지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모티브로 삼아, 캔버스와 전시장 공간을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확장했다. 관람자는 화면 속 파편들을 한데 모아 하나의 온전한 풍경으로 통합하려 시도하지만, 이내 그 환영이 깨지는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익숙했던 장면은 낯설게 변하고, 현실이라 믿었던 이미지는 다시 하나의 조각으로 환원된다.
권소진은 인간이 파편화된 정보를 의미 있는 전체로 재구성하려는 지각의 본능에도 집중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그 완성을 의도적으로 가로막는다. 관객은 익숙한 사물을 마주하고서도 그것이 실제인지 그림인지, 기억인지 현재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 이러한 시각적 긴장감은 작품에 독특한 심리적 깊이를 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철학적 성격과 현대적 의미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화 감상 차원을 넘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철학적 무게감도 지닌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경험, 믿음과 상상력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작품이 조용히 환기하는 셈이다. 작가는 “풍경은 현실이 너무 현실적일 때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 같지 않을 때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전반에 녹여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권소진의 작업은 화려한 서사보다 작은 감각의 변화에 귀 기울이게 하는 드문 전시”라고 분석했다. 관람객은 바람 냄새를 맡고 구름의 결을 읽으며, 어린 시절 벽지 속 하늘이 진짜라고 믿었던 기억을 다시 꺼내보게 된다. 전시장이라는 무대 위에서 작가는 관객에게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과연 현실인가, 아니면 당신의 기억과 상상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풍경인가”라고 조용히 되묻는다.
이 전시는 회화가 여전히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흔들 수 있는 강력한 매체임을 증명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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