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흠 신작 『가를 두고』, 코로나 시대 관통한 8편의 이별과 상실 이야기

2026년 07월 03일

백가흠 가를 두고

코로나 시대를 관통한 여덟 편의 이야기

소설가 백가흠이 지난 5년간 집필한 단편소설 여덟 편을 엮은 신작 『가를 두고』(문학과지성사 출간)를 내놓았다. 이번 작품들은 모두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쳐 완성되었으며, 데뷔 이후 줄곧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잔혹성과 뒤틀린 욕망을 파고들던 그의 필체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전 작품들이 폭력에 노출된 신체를 통해 삶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면, 이번 소설집은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마주할 법한 이별과 상실의 지점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문학평론가 조형래는 해설에서 “신작 속에서 삶의 잔혹성이라는 조건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짚었다. 그는 그것이 간병, 파산, 실종, 노년의 고립, 가족 해체, 뒤늦은 애도라는 형태로 변주되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초기작의 즉각적이고 폭력적인 충격 대신, 이번 작품들은 이미 지나간 사건이 시간차를 두고 인물들의 삶에 도착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분석이다.

“쓰면서 편안했고 많이 슬펐다” — 작가의 고백

출간을 앞둔 시점에서 백가흠은 “쓰는 동안 편안했고, 동시에 많이 슬펐던 기억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소설의 역할을 “남의 일은 내 일이 되고, 내 일은 남의 일이 되는 것”이라고 ‘작가의 말’을 통해 정의했다. 이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른 이의 삶의 형태와 마음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문학을 인간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이유임을 암시한다.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가족조차 “아무도 모르게” 떠나보내야 했던 이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하다못해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숨을 죽여 우는 것뿐이다. 이러한 정서는 작품 곳곳에서 짙게 배어난다.

조지아 평원에서 마주한 아버지의 흔적

수록작 중 「우다브노에서 아침을」에는 ‘지은’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비행 시간만 열아홉 시간 반이 걸리는 조지아 트빌리시로 긴 여정을 떠난다. 단역배우였던 아버지는 자신이 여섯 번이나 죽는 영화를 딸의 손을 꼭 잡고 볼 만큼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처음에는 실종 신고까지 했던 지은은 결혼과 출산, 이혼을 겪으며 아버지를 찾는 일을 점차 포기한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죽음은 ‘슬픈 사건’이라기보다 ‘난처한 일’에 더 가깝게 다가온다.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트빌리시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아르자니 평원의 작은 마을 우다브노에 도착한 지은은 그곳에서 아버지가 운영하던 ‘의성식당’과 이복동생 ‘애나’를 만난다. 식당 곳곳에는 한국식 우물과 지하수 펌프까지 아버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의성에서 나고 자란 아버지가 기르던 개의 이름까지 ‘마늘’이었다. 줄곧 자신을 그리워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뒤늦게 깨달은 지은은 “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는 몰랐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린다.

세대를 넘어 반복되는 고독과 외로움

「빗소리」와 「복숭아를 씹으며」 두 작품에는 인생의 후반부에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아들의 자살, 한국말이 서툰 며느리, 가족 아닌 타인의 돌봄 노동에 의탁해야 하는 공통된 상황에 놓여 있다. 「빗소리」의 화자는 재일 교포 2세로, 하루하루를 술로 연명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품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의 선택에는 아들 ‘상현’이 일본에서 ‘마키 소타’로 살아야 했던 시간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깊은 고독과 외로움이 삼대에 걸쳐 반복되는 구조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아들에 대한 자책 속에서 살아온 그는 장맛비에 둑이 무너지고 마당으로 강물이 밀려드는 광경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상현이도 같이 온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옛날 아버지처럼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복숭아를 씹으며」의 ‘김영태’는 젊은 시절 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사회운동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말년에 이르러 대중의 비난과 조롱을 받는 처지가 된다. 그는 평생 약자의 편에 선 것처럼 살아왔으나 실상은 법의 안전망 속에 자신을 보호하는 데 급급했다. 이러한 이기심은 하나뿐인 아들의 죽음 앞에서조차 자신의 명성을 염려해 장례조차 치르지 않는 비정함으로 이어진다.

상실의 보편성과 문학의 소임

백가흠은 이번 소설집을 통해 상실이라는 보편적 경험을 다양한 층위에서 조명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예상치 못한 이별 앞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지만, 작가는 “갑작스러운 이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떠나는 사람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반드시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며, 결국 후회는 남겨진 이들의 몫이라는 시각을 견지한다. 이러한 그의 시선은 앞으로도 한국 문학에서 상실과 애도를 다루는 새로운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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